
엔비디아의 루빈칩. 최대 발열은 1800W로 알려졌다. /NVIDA

2026년 10월 1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아주대학교 기계공학과 연구실에서 이정호 아주대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지훈 기자
지난 13일 경기 수원 아주대 기계공학과 첨단열관리연구실. AI 데이터센터를 구동할 때 필요한 열 관리 기술을 연구하는 곳이다. 기계의 전원 출력을 올리자 금속판 위로 자잘한 기포가 줄지어 피어올랐다. 판 아래에는 반도체 칩을 똑같이 흉내 낸 ‘모사 칩’이 깔려 있다. 칩이 뜨거워질수록 냉매는 세차게 끓으며 열을 빼앗아 가면서 기체로 변했다.
“액체가 기체로 바뀔 때 ‘잠열(潛熱)’이 생깁니다. 숨어 있던 열을 한꺼번에 뽑아내는 원리죠. 이 과정을 거치면서 달아오른 AI칩이 빠르게 식게 됩니다.” 이정호 아주대 기계공학과 교수가 설명했다. 차세대 냉각 기술로 꼽히는 이른바 ‘2상(相) 냉각’ 기술을 개발하는 모습이다.
300m쯤 떨어진 또 다른 실험실에선 서버를 통째로 액체에 담가 식히는 ‘액침 냉각’을 연구한다.

AI 경쟁이 격화할수록 AI 데이터센터의 발열을 잡고 뜨거워지는 AI 칩을 식히는 냉각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다. ‘열 관리 기술’이다. 정부는 2029년까지 8.4기가와트(GW) 규모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전기를 어디서 어떻게 끌어올지뿐 아니라, 끌어온 전기를 데이터센터 안에서 어떻게 나눠 보내고 AI 칩셋을 식힐지까지 뒷받침되지 않으면, 목표를 이루기 쉽지 않다고 본다.
◇냉각 없인 데이터센터 못 돌려
AI 칩은 해마다 뜨거워진다. 2020년 엔비디아 A100 (암페어) GPU 하나의 최대 발열 (TDP) 은 400 W였다. 2022년 H100 (호퍼) 은 700 W, 2024년 B200 (블랙웰) 은 1000 W, 지난해 B300 (블랙웰 울트라) 은 1400 W로 올랐다. 올해 하반기 나올 ‘루빈’은 1800 W, 2028년 이후 ‘파인만’은 2800W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웬만한 전기 난로보다 뜨거운 수준이다. 이 교수는 “1 MW 랙 1000개를 넣은 AI 데이터센터 한 곳을 돌리려면 원전 한 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문제는 현재 국내 데이터센터의 98% 이상이 차가운 바람을 불어넣어 열을 식히는 공기 냉각(공랭식)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공랭식은 열이 적게 나는 구식 서버에선 그럭저럭 통하지만, 최신 AI 칩 냉각엔 적합하지 않다. 이 교수는 “엔비디아 블랙웰 칩 시대를 넘어가면서 차가운 물을 지나가게 해서 AI 칩을 식히는 액체 냉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최근엔 이로도 부족해 액체가 기체로 바뀌며 열을 식히는 상변화 냉각을 시급히 도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2026년 10월 1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아주대학교 기계공학과 연구실에서 이정호 아주대 교수가 학생들과 상변화냉각판을 보고 있다. /임지훈 기자
◇“이젠 韓이 주도권 가져와야”
현재 AI 데이터센터 하드웨어의 원천 기술은 미국, 부품 공급망은 대만이 쥐고 있다. 미국은 이미 정부 차원에서 차세대 냉각 연구에 수천만 달러를 쏟으며 하드웨어 시장을 선점했다. 대만의 AVC 같은 기업은 엔비디아 최신 AI 서버를 식히는 냉각판(콜드 플레이트)의 40~50%를 공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AI 서버의 약 90%도 대만 기업이 조립한다. 반면 한국은 서버부터 냉각 장비까지 사실상 전량 수입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서버의 국산화율은 3.3%(2024년 기준) 정도다
공기·액체 냉각 같은 ‘1상 냉각’ 시장은 미국과 대만이 장악했지만, 진짜 승부처는 ‘2상 냉각’이다. 시장조사업체 ‘델오로’는 2상 냉각이 2026~2027년부터 본격 도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냉각 스타트업 액셀시어스가 전기난로 100대분 열을 내는 서버 장비 한 대를 상변화 방식으로 식히는 제품을 내놓는 등 이제 막 시장이 열리는 단계다.
정부도 냉각을 수출 산업으로 보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데이터센터 냉각 시장이 2030년 172억달러로 두 배 넘게 커지고, 이 중 액체 냉각은 해마다 15%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2상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학계와 LG·삼성 등 열관리 기업들이 총력을 기울이면 2030년 이후 AI 데이터센터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